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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복 수선의 달인

조회 수 2683 추천 수 0 2010.08.03 14:55:30

            “어디를 고쳤는지 알 수 없다!”

언제부턴가 ‘생활의 달인’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다. TV 프로그램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평범해 보이는 일이지만 놀랄 정도로 능숙하게 해내는 이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단순한 작업도 숙련도에 따라서는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여러 종류의 ‘달인’이 존재한다.

인간 생활의 3대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하나인 옷은 필연적으로 수선이 요구된다. 또한 모델처럼 완벽한 체형을 가진 행운아들이 아니라면 기성복은 수선을 통해 맞춰서 입는 것이 보통이다. 아무리 자신의 체형에 잘 어울리는 옷이라도 바짓단이나 통 정도는 줄여서 입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등산복이 일상복처럼 이용되기 시작하며 등산복 수선의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등산복은 일반적인 캐주얼과는 상이한 특징을 지닌 소재가 사용된다. 방수·투습·발한 기능 외에도 엄청난 신축성과 내마모성·내열성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등산복 수선은 일반 의류와 달리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등산복 수선에도 달인이 있다. 정말 감쪽같이 옷을 수선해내는 이들이다. 등산복도 옷의 한 종류이기에 수선하려면 기초적인 봉제기술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활동성이 중요한 등산복은 특수봉제기계의 사용이 필수다. 거기에 다양한 옷을 다뤄본 경험이 가미되어야 수준급의 등산복 수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각지에 등산복 수선업체가 있지만 역시 원조는 서울 동대문 등산장비점 밀집지역에 위치한 수선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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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대문시장 좌판의 의류수선소. 간단한 수선은 가능하다. 2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의 등산의류들. 3 서울 종로5가 등산장비점 골목의 원조 수선가게 ‘이코레츠’ 간판. 4 재봉틀을 이용한 봉제로 바지를 수선하는 모습.
동대문엔 전국적 명성의 수선전문점도

종로5가 장비점 거리의 한 건물 3층. 간판도 없는 철문을 열자 여러 대의 재봉틀이 줄을 맞춰 서 있다. 그 위의 선반과 테이블 위에는 등산복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 정신없는 가운데 한 사람이 바삐 재봉틀을 돌렸다. 그리고 한쪽 구석 의자에서 여자 손님 한 명이 옷이 수선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 바지를 하나 맡겼는데, 어디를 고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골수팬이 됐지요.”

이곳에서 만난 손님은 장비점에 등산복 수선을 맡겼다가 솜씨에 감탄해 작업실까지 찾아올 정도로 충실한 고객이 됐다. 이제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언제나 이쪽에 옷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종로5가 등산복 수선업체들의 고객은 대부분 등산장비점들이다. 사실 이런 개인 고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서울 동대문 일대의 등산복 수선업체는 두세 곳에 불과하다. 가장 먼저 생긴 것이 ‘이코레츠(02-2269-4925)’로 10년 전쯤 문을 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의 간판에는 ‘의류수선’이라는 간단한 안내만 붙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동대문은 물론 전국 각지의 장비점에서 등산복 수선을 의뢰하는 이름난 업체다. 오랜 등산복 수선 경험을 바탕으로 티 나지 않게 옷을 잘 고친다고 알려졌다. 늘 일감이 밀려 있어 좀 복잡한 옷은 일주일 이상 기다리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한 곳은 등산장비점인 디딤돌 부근의 등산복 수선소다. 5년 전쯤 문을 연 곳으로 A씨가 단독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이 업체 역시 주변 등산장비점의 물량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데 봄·가을 시즌이면 밀려드는 물량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업 중이다.

동대문시장 좌판의 의류 수선소에서도 등산복을 수선한다. 인근 등산장비점 관계자들은 ‘태양수선’이 등산복 수선에 일가견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10년째 의류 수선을 하고 있는 O씨는 일반 의류와 등산복 수선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등산복 특유의 기능성을 살리기 위해 신축성이 있는 실을 사용하는 등 미세한 차이는 인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보다 등산복 수선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등산복은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복잡해 물건을 봐야 수리가 가능한지 알 수 있습니다. 바짓단을 잘라서 줄이는 것도 간단하지 않아요. 끝에 코드가 들어 있거나 덧대는 패턴이 있는 제품은 까다롭지요. 중간의 절개선을 뜯어서 줄이거나 패턴을 떼어내 옮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복잡한 것은 특수봉제기구가 없이는 어렵고, 여기에서는 바짓단이나 통·허리·재킷 소매 정도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신경을 쓰더라도 수선을 하면 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몸에 딱 맞는 스타일 고집하는 손님도 많아


디딤돌 건너편 작업실에서 5년째 등산복을 수선하고 있는 A씨의 경우 보다 전문적인 수선시설을 갖추고 있다. ‘삼봉미싱’과 ‘오버로크’ 등 특수재봉기를 구비해 고난도의 수선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아무리 좋은 기계를 갖췄다고 해도 경험 없이는 등산복 수선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제품들은 특별한 전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이 많기 때문이다.

“요즘 재킷 소매의 복잡한 디테일을 살리려면 어깨나 중간 부위의 절개선을 뜯어서 수리해야 합니다. 소매 끝을 자르면 아무래도 표시가 많이 나니까요. 수선 제품은 거의 고급 옷들인 데다 요즘 분들은 이런 옷을 맵시 나게 입으려는 욕구가 강해요. 몸매에 딱 맞는 스타일로 무리하게 고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난리가 납니다. 워낙 비싼 옷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서 자신 없는 작업은 아예 못한다고 말합니다. 표가 나는 것을 감수하면서 맡길 때는 어쩔 수 없이 해주지만 손님들이 만족하지 못하면 저도 속이 상합니다.”

등산복 수선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재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하고 사용하는 재질에 적합한 실을 골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실을 이용하면 마찰면에 보풀이 일어나기 때문에 코팅된 실을 사용하는 것도 이들의 노하우다. 또한 옷이 고가라 수선용 소재도 고급품을 사용해야 한다. 지퍼의 경우 최고급인 Y사 제품을 사용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물량 대부분이 큰 사이즈를 작게 줄이는 겁니다. 바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재킷도 적지 않아요. 요즘에는 아시아용 제품이 따로 나와서 황당하게 줄여 달라는 요구가 줄었지만 여전히 몸에 딱 맡게 만들어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티셔츠도 고급 제품은 수선을 하는데, 신축성이 커서 내의류에 사용하는 삼봉미싱을 써야 합니다. 일반 봉제는 시접 부위가 금방 터져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상대적으로 비싼 수선비는 아쉬워

최근에는 웰딩공법을 이용한 무봉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이런 제품은 사실 특수가공기계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수선업체에서 시설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제품은 봉제와 심실링 테이프를 이용해 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겨울용 우모복은 사이즈를 변경하는 수선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제품은 불에 닿아 생긴 구멍을 땜질을 하는 수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모복 땜질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구멍 난 부위의 안쪽과 바깥을 모두 잘 붙여야 티가 안 나고 깔끔하다. 하지만 우모를 보충하거나 일부를 교체하는 작업이 까다로워 우모복 제조업체도 잘 손 대려 하지 않는다.

등산복 수선의 달인들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다. 특히 사이즈가 맞지 않는 외국산 고급 의류는 이들의 손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등산복을 고쳐 입는 것은 멋쟁이들에게는 큰 기쁨이다.

하지만 아직 고급 등산복 수선은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간단한 패턴의 고어텍스 바짓단 하나를 줄이는 데 몇만 원을 받는 곳도 있다. 경험과 노하우에 대한 대가이긴 하지만 비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수요는 많은데 수선할 곳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등산복 수선의 달인들이 대량으로 배출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현상은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 글 김기환 차장
  사진 조선영상미디어

  [489호] 2010.07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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